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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Alchemion 2024. 7. 3. 12:54

 변화는 의식의 수준과 상태가 바뀔 때야 비로소 근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의식의 수준과 상태를 '나'를 둘러싼 내외적 환경의 총체를 결정짓는 요소이며, 맥락이 달라져야 그에 따라 수반되는 내용적 측면도 바뀔 수 있다.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의 핵심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통찰보다는 '받아들이는 느낌'에 가깝다. 물론 느낌의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 올바른 생각을 정립하는 것은 전제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느낌이 동반되지 않는 변화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에 지루함과 졸림을 느끼는 것을 쉬이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다. 사변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추상적 내용은 심신에 그 어떠한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통합적이고 나뉘어 있지 않으므로 좋은 느낌에 대한 자극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한, 남성의 구애는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감성'은 눈 앞에 보이는 세계를 해석하는 마음의 창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여성들의 강렬한 선호는 물질의 어둠에 파묻혀 있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감성을 열망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수준 높은 감성은 의식의 변성을 동반하며, 이는 더 높은 자각 상태에서 증가하는 빛의 밝기와 연관성이 깊다. 무의식적인 끌림은 여성의 가슴이 남성의 자각 수준, 다시 말해 머리에서 울리는 진동에 반응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외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내면의 여성은 남성의 의지가 저차원의 진동이 아닌 고차원의 진동으로 향할 때, 아름다움이라는 보상을 안겨준다. 지혜는 필연적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과 더불어 순수하고 정제된 빛을 가져온다. '받아들이는 느낌'이 변화할 때, 우리들은 진정으로 더 높은 자각의 상태에 눈을 뜨고, '안다'(knowing)는 것에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궤변이 만들어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영혼의 언어는 느낌이다.

 

 

 < 창조적 과업의 핵심 역량 >

 

 느낌에 대한 왜곡, 잘못된 신호가 발생하는 이유는 받아들이는 느낌을 해석하는 주체가 스스로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모태인 의식 자체에 제한을 가하는 것과 다름없다. 의식을 몸과의 동일시로 제한함으로써 우리들은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샘솟는 기쁨을 차단한다. 이는 생명의 숨결이 호흡을 통해 들어오는 데에 막대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잘못된 신호 체계를 다시 올바르게 되돌려놓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만물을 포용하고자 하는 전적인 수용의 마음가짐과 감정을 증폭시키고 고조시키는 의지의 불꽃이다. 호흡은 창조적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을 때, 목적을 성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고진동의 생각을 담은 호흡은 저진동의 생각을 떨쳐버리는 감동의 전율을 발생시키며, 감정의 승화라는 업적을 달성함으로써 '감성'이라는 보배를 얻는다.